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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비평
오유경, 일상의 시(詩)를 설치하다 김미진 (홍익대미술대학원 교수) 삼각뿔모양의 종이컵들은 동굴의 종류석처럼 쌓여 산봉우리가 되고, 점점 그 개체가 늘어나면서 산맥을 형성하고, 유선형의 바닥 빈 공간을 만들면서 퍼져나가 마침내 거대한 산간지대의 지형도를 완성해 놓는다. 오유경의 2010년 작인 설치작업은 일상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의미인 자연을 대입시키는 조물주의 창조적 행위를 경험하는 작업이다. 가벼운 일회용 종이컵은 일상적 사물의 특성이 아닌 작가가 선택한 자연개체의 고깔형태라는 본질로 전환되고, 그녀의 얹고 쌓아가는 시간적 행위와 함께 희고 단단하며 강한 물성의 신비스러운 자연을 표현한 예술작품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오유경은 산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이것이 그녀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녀는 친구들과 가벼운 복장으로 고도 4000m 되는 라다크의 고산지에 있는 탱화들을 보기위한 산행도중 갑작스런 기후변화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고산지대에서 만나게 되는 기후와 공기, 빛, 소리라는 자연의 다양한 변화와 초월적 기운을 민감하게 자신의 몸과 함께 느끼며 삶의 죽음의 스펙트럼으로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 자신은 실제 추위와 중력으로부터 체온이 내려가고 호흡의 압박과 함께 죽음의 순간까지 경험한 것이다. 여기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는 미지의 세계와 뒤엉키는 상태였고 예술가의 치유 행위라는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가진 그녀에게 더욱 확신을 주며 영향을 미친다. 요셉 보이스가 루프트바프(Luftwaffe)에서 폭격기 조종사로 근무하던 중 포탄에 맞아 크라미아(Cramiée)로 떨어져 죽을 뻔 했을 때 타타르부족이 펠트 천과 기름을 사용해 그를 살려준 것에서 경험되어진 치유적 방식과 재료에서 내재된 생명력을 평생 보이스작업의 모티브로 사용한 것과 유사하다. 최근작인 에서 흰색의 일회용 종이컵은 하나를 담는 가장 가볍고 하찮은 상징적 도구다. 아마 작고 가벼운 외형을 가진 작가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그녀가 경험한 물질계나 정신, 자연, 초자연적 상태 모두가 들어있다. 또한 미술에 있어서 조각적이거나 만들어내는 작업에 관해 이미 완벽한 물질과 정신을 표현하고자 사용하는 질료의 생성과 소멸을 담아내는 알레고리적 재료라고 본다. 이 하찮은 일상도구는 작가의 행위와 시간과 함께 쌓여가며 질량을 만들고 형체를 드러낸다. 그것들은 겹쳐짐으로 단단한 매스로 전환되고 공기를 사이에 머물게 하며 흰색의 아우라는 뿜어내고 있다. 오유경은 한걸음씩 내딛으며 정상에 오르는 산악인의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종이컵을 쌓아가며 예술적 정상을 표현한다. 이 작업에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태도의 간격이라는 심적 거리와 예술과 삶의 일체가 몰입된 작가의 행위를 관객에게도 동시에 이입시킨다. 우리는 종이산 사이를 거닐면서 작가가 들인 인고의 시간과 흰색의 질료가 만들어내는 숭고의 아우라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는 산을 정복한 자의 희열과 그 과정에서의 육체적 극복, 치유가 예술로서의 사회적 치유까지도 연결된다. 그러나 이 작업에서 형태의 반복과 축적은 개념을 강하게 전달하고 시각적인 효과를 가져오나 보편적 감각에 머무르기 쉬운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전의 작가가 최소한 개입되고 바람이란 자연으로 움직이며 법칙을 만들어가는 큐브작업들에 비해 형태의 한계를 드러내 보인다. 반면 2009년도 작 에서는 전시 공간에 일상적 사물을 곳곳에 설치하고 타이머로 스포트라이트를 작동시켜 실제와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효과로 뜻밖의 상황이 연출되며 각자 저 너머의 상상과 접목되는 순간과 접목시킨다. 어둠속에서 스포트라이트로 조명을 받는 오브제들은 연극의 배우처럼 각자를 드러낸다. 인공조명은 모든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디지털영상세대에서 미지의 숨져진 사실을 갖고 있는 지난 영화나 무대의 향수를 불러들인다. 벽에 드러난 못은 그림자로 시간을, 낙타인형은 사막을 걷고 있는 진짜 낙타를, 비행기와 새의 모형도 실제 비행하는 사실적 형태를 만들고, 벗어 걸어놓은 옷에서 움직이며 행동하는 배우가 연상된다. 한편의 대지 탐험여행을 하는 장면 속으로 깊이 빠져 들게 한다. 인터넷매체, 광고, 영화, 문자, 디자인, 사진 등 온갖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는 정보시대에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된 우리들은 대신 많은 꿈과 상상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오늘도 마법사 프로스페로, 반지의 제왕과 아바타를 디지털 세계에서 찾아내며 열광하고 있다. 일상사물에 빛, 그림자, 바람, 물이라는 자연스러운 비물질 요소를 개입시켜 환상적인 꿈의 세계를 열어 보일 줄 아는 오유경은 마법같은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되는 작가다.
움직이는 사물 오유경은 오브제, 즉 세상의 모든 물건, 사물, 물체, 물품 등을 모티프로 작업한다. 그의 오브제에 대한 애지적(愛智的) 관심과 작업은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고장이 나거나 수명을 다해 용도 폐기된, 버림받은 물품들을 주워서 새로운 그 무엇으로 바꾸어 놓는다. 둘째 본래의 기능과 용도, 형태, 재료적인 부분 등으로부터 취한 사물에 대한 구체적 인상, 이른바 지각(知覺) 표상과 선입견을 비표상화, 관념화시킨다. 셋째 이런저런 곳에서 주운 오브제에 대한 부분적인 수선(mending)과 예술적 개입을 통해 새로운 형태와 생명을 부여한다. 넷째 버려진 오브제 이외에도 특정 목적을 가지고 대량생산된 신제품, 예를 들면 쓰레기봉투라든가, 고무풍선, 일회용 종이컵, 복사용지, 풀을 먹인 광목천 등을 사용해서 새로운 예술형식과 질서를 창출한다. 이러한 오유경의 오브제 작업에는 그것을 어루만진 작가의 인간적 호흡이 치밀하게 배어 있다. 재료의 물성과 형태가 먼저 다가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따스한 기운이 우선 느껴진다. 오유경이 제시하는 오브제 작업은 제품이라는, 예술이라는 특정 용도와 기능을 위해 단순 봉사하는 오브제가 아니다. 그의 작업은 직관적이기보다는 그것을 접하는 인식주제로서의 관객의 경험과 뜨겁게 조우하는 심적 복합체로서 기능하고 있다. 오유경 오브제 작업의 공통점은 재활용용품이든, 신제품이든 작가의 연금술사와도 같은 어루만짐과 호흡이 시종을 일관하며 개입한다는 점이다. 모두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함은 물론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버려진, 주운 오브제들이 작가의 부분적/전면적, 예술적 재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체로 부활한다면, 기성의 신제품들은 작가 자신은 물론 외적인 동인, 이를 테면 바람, 관객의 개입, 빛, 전기적인 동력 등에 의한 움직임, 또는 동어반복적인 집적(集積)과 해체과정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일종의 키네티컬(kinetical)/옵티컬(optical)한 물리적/시각적 흔들림과 움직임(cinétisme)을 총제적으로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오유경의 오브제 작업은 사물의 의미 자체가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개념으로서의 오브제작업이다. 또는 오브제 자체가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또는 오브제는 물리적으로 움직이지 않지만 보는 이가 오브제들의 병렬적, 반복적, 집합적 집적으로 인해 일종의 므와레(moiré) 현상을 경험하기도하는 ‘움직이는 사물’이다. 따라서 그의 오브제 작업은 사물에 대한 고정 관념을 예리하게 건드리는 일종의 지적인 개념유희일 수도 있고 시각유희일 수도 있다. 또다른 차이점은 버려진 오브제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능을 소진하거나 일정 부분 상실하였다는 점이고 신제품의 경우, 기능을 드러내기도 전에 작품의 재료로서 포획되어 전혀 다른 맥락에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브제로서 후자는 전자에 비해 자칫 경직되고 차가운 느낌을 전달할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작가 특유의 호흡으로 주조되어 두 경우 모두 잔잔한 떨림과 울림을 각각 선사하고 있다. 이러한 오유경의 오브제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아이러니다. 그는 오브제가 가지고 있던 대상으로서의 객관성을 탈각시킨다. 가벼운 것을 무겁게 하고 무거운 것을 가벼운 것으로 치환(置換)시킨다. 물리적, 시각적으로도 그러하다. 나아가 물리적 치환을 넘어 보는 이의 경험 구조 속으로 파고든다. 오유경은 자신의 오브제 작업을 특정 대상으로서의 오브제로 소급하려는 관객의 태도나 감정을 경계하며 그것을 다른 차원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브제로서의 개념은 환원적이지만, 개념으로서의 오브제는 확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오유경의 최근 오브제 작업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반복이다. 행위와 형태, 비슷한 모듈이 수 없이 반복된다. 이를 테면 광목천에 풀을 먹여서 일정 형태, 예를 들어 의자를 만들고 다시 그것을 물로 녹여서 평범한 천으로 되돌리는 행위, 일회용 종이컵을 수 만개 동원하고 그것을 며칠에 걸쳐 바닥에 가득 늘어놓는 지난한 행위 등이 그것이다. 또한 헬륨 가스와 공기를 적당히 섞은 튜브를 이리저리 치고 던지는 관객들의 반복되는 행위, 복사용지로 입방체를 만들어 쌓아 놓은 후에 선풍기 바람을 틀어 무너뜨리고 다시 무너진 박스들이 원하지 않은 질서로 쌓이는 과정과 행위 등이 반복되는 작업들이 그것이다. 작가와 관객의 반복되는 행위는 퍼포먼스와 그 결과로도 강조되고 나타난다. 사물을 관념화하고 대상을 주관화하는 오유경의 작업은 그의 오브제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임을 고백하고 있다. 그의 오브제들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작가 자신의 내면을 투명하고 있다. 이는 몇 해 전 숨쉬기도 힘들고 걷기도 힘든 고산지 라다크 답사를 하면서 관심을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손에 잡히지 않는 에너지’에 대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 전체를 통해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비물질적인 존재다. 대상으로서의 사물들은 무거워 보이는 것들이지만, 작가의 작업 안에서 이들의 공통점은 가볍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작업들이 바람에 흔들리거나 날리는 반응을 보인다. ‘거룩하고 무거워 보이는 것들의 가벼움, 그것이 의외로 얕고 가벼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바로 오유경의 오브제 작업이다. 생각의 깊이와 원재료와 기능을 뒤집어 보는 연금술사로서의 작가의 예술적 경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유경의 작업은 대부분 달려 있거나 놓여 있다. 공중에 떠 있는 경우와 특정 사물, 혹은 바닥에 더해져 있는 경우다. 이런 독특한 설치방식은 사물에 대한 고정 관념이라든가 권위, 무거움을 떨쳐버리거나 간단히 제거해버린다. 쓰레기 봉투가 하늘을 나는 아이러니를 상상해보라. 트레이싱페이퍼로 만든, 오를 수 없는 사다리, 바닥에 견고하게 놓여 있던 의자를 하늘 높이 매달아 바람에 날리게 하는, 바닥에 놓여 있던 것들을 높이 날리듯 들어 올리는 오유경의 발랄함을 떠올려보라. 마지막으로 오유경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 중 중요한 하나는 그의 작업이 집적(aggregation)의 형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동일한 모듈이 반복되면서 형성하는 증식으로서의 멀티플 양상이 압권이다. 주지하다시피 동어반복은 강조다. 반복은 힘이다. 하나 같이 사소하고 힘없는 연약한 오브제들이지만, 하나하나 쌓인 먼지의 두께를 보는 듯하다. 연약한 재료들로 구축되고 병렬적인 집적을 보이는 그의 작업에서 느끼는 기운은 바로 힘이다. 시각적인 힘, 물리적인 힘이다. 공격적이지 않고 둔탁(heavy)하지 않으면서 편안한 생물학적 세포분열, 증식을 경험하는 듯하다. 마치 자연의 규칙을 보는 듯 일정한 방향성을 보이기도 하는 오유경의 오브제 작업은 살아 움직이며 인간 세상의 심리적 지형을 그려내듯 오늘도 이곳저곳의 시공을 점유해 나간다. 공간과 매스에 대한 지적인, 역학적인 관심이 돋보이는 오유경의 오브제 작업은 단순 기능의 부활이라기보다는 버려진 오브제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그것을 새로운 맥락으로 끄집어내는 정신적 수선이요 예술적 재활이다. 그의 행위와 작업은 간호하고 치유하는 치료적 행위이자 하나의 의식, 제의적인 설치 과정이다. 오유경의 작업을 ‘오브제를 통한 주술적 행위’라 부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설치 작업은 연출(Mise en scéne)적인 특성을 강하게 보인다. 또하나의 특징은 현장에서(In Situ) 작업한다는 점이다. 현장을 조각하는 오브제 작업이다. 따라서 대단히 시적(詩的)인 동시에 치밀하고 즉흥적이다. 전후 맥락을 가늠할 수 없는 표현주의 시 같이 난해한 독해불가능한 시가 아니라, 하나의 편안한 서정시 같은 것이다. 관객이 편하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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